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청소년 범죄라는 민감한 주제를 깊고 사실적으로 다뤄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단순한 범죄물로 보이기 쉬우나,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각 인물의 복잡한 내면과 선택,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서 비롯됩니다. 주인공 오지수, 배규리, 이선우는 각기 다른 환경과 심리를 지닌 인물들로, 극의 몰입도를 높이며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수업 속 핵심 인물 3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심리, 변화, 상징성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오지수: 모범생 이중생활의 그림자
오지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조용한 고등학생이지만, 실상은 불법 성매매 알선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물입니다. 부모의 부재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성공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은 그를 범죄의 길로 이끌었고, 그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놀랄 만큼 치밀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오지수는 드라마 내내 끊임없이 '도덕적 갈등'과 '생존 본능' 사이를 오갑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며, 스스로를 ‘피해자 없는 범죄자’로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배규리와의 관계를 통해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내부 균형은 무너지고 결국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인물 오지수는 ‘현대 청소년이 처한 현실의 압박’을 상징합니다. 명문대 진학, 부모의 무관심, 경제적 불안 같은 요소들이 그를 비정상적인 선택으로 이끕니다. 그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왜곡된 생존’의 아이콘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간성과 도덕의 경계를 묻는 강한 질문을 남깁니다.
배규리: 반항과 공허 속 진짜 나 찾기
배규리는 재벌가의 딸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그 삶 속에는 깊은 공허와 반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외모와 성적, 거침없는 성격을 가졌지만, 그녀의 내면은 부모의 통제에 짓눌려 있고, 진짜 자아는 철저히 억압되어 있습니다. 그런 배규리가 오지수의 범죄에 일부러 뛰어드는 과정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증명을 위한 투쟁입니다.
규리는 지수를 통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선택을 감수하고, 때로는 지수보다 더 과감한 행동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입장을 취하며, 인물 간의 권력 구조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상징성은 ‘고립된 10대의 자아 탐색’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적 틀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줍니다. 규리는 결국 파국을 향해 가지만, 그 안에는 분명 시대를 사는 청소년의 고민이 짙게 녹아 있습니다.
이선우: 유일한 윤리적 시선의 균형추
이선우는 담임교사로 등장하며,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어른’으로 기능합니다. 그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특히 오지수에게는 교사 이상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수의 범죄를 끝내 막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한 인물로 남게 됩니다.
이선우는 인간수업에서 ‘양심’과 ‘제도권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제도 내에서 정의를 추구하지만, 시스템은 이미 균열 났고, 어른의 말은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합니다. 그는 지수에게 진심을 전하지만, 지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존재는 드라마에 윤리적 균형을 부여합니다. 그가 계속해서 진실을 추구하고, 학생들의 상황에 개입하려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어른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현실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그가 놓지 않는 소신은 드라마가 너무 어두운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만드는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합니다.
‘인간수업’은 단순히 범죄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인물 각각이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대변하는 강력한 서사극입니다. 오지수는 생존의 그림자, 배규리는 억압된 자아, 이선우는 윤리적 소신을 상징하며, 이 세 인물의 충돌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 드라마가 남긴 질문을 다시 곱씹으며, 지금 다시 ‘인간수업’을 보는 건 어떨까요?